[드리밍/센타카] 애정의 대가
*센리->타카오미의 소유욕 묘사 주의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센리와 타카오미 (포함 1학년즈 모두)가 2학년
―어제부터 반복으로 틀던 재생목록을 중지시켰다. 귀를 막은 이어폰의 틈새로 시시마루의 게임 플레이 소리가 들려왔다. GAME OVER.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항상 같은 구간에서 게임오버 당하는 시시마루를 핸드폰 화면과 번갈아 가며 힐끔거린다.
가까이서 보면 꽤 긴 속눈썹에 가는 눈매. '입만 안 열면 미소년' 클리셰의 정석 같은 얼굴. ...... 이지만, 나는 그 악의 없는 독설도, 싫어하지 않아. 본인에게 말했다가는 독설이 아니라 명치를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더니 조이스틱을 내려놓은 맑은 회안과 눈이 맞았다.
"뭘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바보 토끼"
...... 아, 하지만 가끔씩은 사랑스러운 말이 듣고 싶을지도.
나와 시시마루는 사귀고 있다. 교제를 시작한 건 6개월쯤 전. 고백은, 예상했겠지만 물론 내 쪽에서.
나름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져서 입학 초보다 여유로웠던 1학년의 가을. 분명, 푸르게 무르익었던 나뭇잎이 붉게 떨어지던 쓸데없이 넓은 학원의 뜰에서였다. 유마삐에게 말했을 때 "고백인데... 옥상이 아니었어...?" 라며 이상한 곳에서 태클이 걸렸기에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원의 뜰에서, 괜히 불러낸다며 툴툴거리는 시시마루를 앞에 둔 채 대충 일방적으로 말을 전달하고는 리허설에 늦었을 때 보다 빠른 속도로 기숙사에 들어가 '니토 푸딩 ~우울할 때 용~' 을 꺼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괜히 한입에 넣었다고 후회하며 반쯤 삼켰을 때 시시마루가 방에 들어와 사레에 걸렸고, 곧바로 돌아온 OK 사인에 당황해 식당에서 된장국을 뿜었을 때 이상으로 바닥을 더럽혔던 것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 이건 잊어버려도 되는데.
조금 있으면 200일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나름 괜찮은 연애를 하며 단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다. 시시마루는 좀처럼 좋아한다던가 사랑한다던가 하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최근에 갑자기 끊겨버렸다. 확실하게 본인의 말로 듣고 싶다. 내가 사랑한다 하면 '......나도' 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사랑해'라고 한 마디만 더 덧붙여줬으면 한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 니토?"
"...... 어, 어어? 왜?"
"멍하니 뭐 하는 거야"
노래, 새어 나온다고. 덧붙여진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어폰이 빠진 것도 모르고 멍하게 노래를 틀었던 건지, 소파에 떨어진 이어폰에서 재생목록의 2번 음악이 흘러나왔다. 허둥지둥 핸드폰 화면을 켜 노래를 중지시키자 시시마루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고 있었던 눈동자가, 지금은 TV 화면에 꽂혀있다. 항상 게임오버 당하던 구간을 능숙하게 클리어하고 있는데도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해 줄 수 없는 건 왜인지.
나와 시시마루는, 나름 좋은 연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어제만 해도 간장이니 소스니 하는 기억하기도 민망한 이유로 몇 시간이나 싸웠다. 그리고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그보다 훨씬 전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다. 주먹 싸움은 없고, 사귀기 전보다 빨리 화해하지만, 싸운 후의 정적은 몇 번을 겪어도 무섭다. 그리고 그 정적을 무서워하는 게 나 뿐일 거라는 건, 그보다 더. 두려워. 시시마루.
...... 라는 건, 사소한 싸움이 두 자릿수 후반으로 넘어갈 뻔했던 날 알아챘다.
애정이 식는 게 두려워. 네가 날 좋아하지 않게 될까 봐 무서워. 시시마루가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도, 사실은, 싫은데. 말하지 못했다. 괜히 싸움을 부추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이러다가 싸우기만 하던 관계로 돌아가 버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난, 어떨지.
수많은 사람과의 이별을 겪어왔지만 시시마루와의 이별은 사절이다. 이 관계가 억지라고 해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이 감정이 소유욕이라 해도, 처음으로 가진 애정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 배우로서, 연극을 하며, 불안정한 사랑은 몇 번이든 봐왔다. 그리고 그 배역에 동화되는 감각과 함께, 몇 번이든 느껴봤다. 영원한 이별, 되돌릴 수 없는 관계, 쎄한 공기와 미련. 연기라는 걸 알아도 쉽게 깨어날 수 없었다. 현실과 연극이 동화되는 건 한순간이니까. 그렇기에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으로 포장한 소유욕을. 애정의 독점을. 내 애정의 대가는, 너의 애정으로 받고 싶어.
"타카오미."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기댄다.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이내 기대기 편하도록 고쳐 앉는 움직임을 느끼며, 다시 한번 얇게 싸여진 소유욕을 삼켜낸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옆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뭔데."
"사랑한다고 말해줘."
"하?"
이런 말은, 한 번 하기로 결정했으면 직구로 던져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연극 동료였을 그를 그다지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애에는 둔감한 탐정 님이다. 변화구는 먹히지 않으니 돌려 말해봤자 신경만 긁을 뿐.
"...... 갑자기 뭐야."
"갑자기가 아니야."
계속 생각했어.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요즘 한 번도 말해준 적 없으니까......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몸을 돌려 시시마루의 얼굴로 시선을 주니, 줄임표가 3개, 물음표가 2개쯤 띄워져 있을 듯한 얼굴로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 다물지도 못한 입은 평소 같은 독설을 내뱉지도 못했다. 분명 본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너를 동요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어. 평소보다 크게 뜬 눈으로 나만을 담고 있다는 것도, 조금 전까지 기대있었던 후드티에 내 향수 향이 남은 것도. 내가 너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
이제 너는 어떻게 할까. 헛소리 말라며 자리를 피해버릴까, 건조하게 좋아한다며 얼버무릴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반드시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이제 어느 쪽이든 좋아. 그 눈이,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더 나를 향해준다면. 만족할 것 같으니까.
"...... 진짜."
시시마루가 뱉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품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한발 늦게 시선을 내려보면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탁한 초록빛이 슬쩍 보여온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로 감겨온 익숙한 손끝으로 알았다. 시시마루가, 나에게 안겼다고.
사귄 지 꽤 지났으니까, 포옹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시마루가 먼저 나에게 안겨 왔다. 몇 번이나 망설였던 샴푸 향이 끼쳐오며 빠르게 뛰기 시작한 맥박이 전해져왔다. 지금 엄청 행복하지만, 행복하긴 하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 네가"
"응?"
"저녁에 밖으로 나가는 날, 하루 줄이면"
"......에"
"그러면 몇 번이든 해줄 테니까......"
흐린 말꼬리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리저리 불려 나가는 날이 많아지긴 했지. 수업이 끝난 후에는 계속 번화가로 나가서 저녁 늦게야 돌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나갈 때마다 시시마루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게임 소프트를 골랐으니까, 설마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떠올려보면 시시마루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솔직하지도 않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먼저 본심을 드러낼 줄 모른다.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불만이나 바라는 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기숙사를 비울 때마다 그가 보이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배우 실격이네.
"시시마루, 외로웠어?"
"......"
"응? 말해줘."
"...... 응."
몇 번 추궁한 뒤에야 겨우 짧은 대답을 들었다. 웅얼거리듯이 뱉은 대답이 머리에 박혔다. 시시마루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기뻐서. 혼자만 불안해하는 게 아니었다는 게, 안심돼서. 얼굴로 떠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나는 시시마루를 세게 끌어안았다.
"시시마루."
"......"
"원하면 매일 옆에 있을 테니까."
"......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어."
평소처럼 투덜거리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안은 팔은 놓지 않는다. 분명, 나는 시시마루의 이런 점에 이끌려서 사랑에 빠졌겠지. 사귀기 시작했을 때의 그 떨림이 오랜만에 심장에 전해져왔다. 사실은, 내가 고백했던 그날, 푸딩을 뿜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른 채 시시마루를 끌어안았다.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때의 행복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를 안은 채 맑은 샴푸 향을 맡고 있으니 나른하게 잠이 쏟아져서, 그에게 기대며 스르륵 눈을 감아버렸다.
"사랑해. 시시마루"
"...... 사랑해."
앞으로도, 그 눈동자로는 나만 봐 줬으면 좋겠어. 너의 옆자리도, 품도, 체온도, 전부 나에게만 줬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애정의 대가는, 너로 충분해.